행운과 환상의 바퀴

전염병
고향 동창회에 들렀다 도쿄로 돌아가는 여자
역 에스컬레이터





이 둘은 전생에서도 만나서 행복했을 것 같다
현생에서도 만나서 행복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전염병 이야기는 이 둘의 만남에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인다.)

우리 집에 오지 않을래? 고향에 남은 여자는
도쿄로 돌아가는 여자를 잡고 제안한다. 에?
도쿄로 돌아가는 여자는 잠시 주저하지만 고
향에 남은 여자를 따라가고 고향에 남은 여자
가 결혼해서 좋은 집에 살고 성이 바뀐 것을
보고 고향에 남은 여자는 도쿄로 돌아가는 여
자를 위해 한 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을 위해,
차를 끓이고 도쿄에서 무슨 일하니? 지금은
많이 힘들겠구나. 남편은 이러저러한 일을 하
지. 그렇게 고생하지는 않았어. 아들이 있고
딸이 있지. 도쿄로 돌아가는 여자는 가족에
대해 별 말을 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나누면
서 냉동실에서 양갱을 꺼내고 나는 양갱 좋
아하는데, 우리 집 식구들은 안 먹는 것 있
지 (아 나도 양갱 좋아하는데. 양갱 사 먹고
싶다.) 둘을 소파에 앉아서 양갱과 차를 즐
기며 (그리고 시원한 얼음물도 즐기며. 일본
사람들은 얼음물을 정말 좋아하지.) 남편 아
들 딸 거실 한켠의 피규어 아들의 택배 내용
물 그것은 아니메 디비디 피아노 양갱 (둘의
이야기는 합이 잘 맞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
래도 결혼하고 애도 낳고 살다 보면 잊어버
리고 사는 것도 많겠지 그렇지.) 너 행복하
니? 도쿄로 돌아가는 여자는 갑자기 고향에
남은 여자에게 몇 번이나 묻고.

고향에 남은 여자는 도쿄로 돌아가는 여자에게 묻는다.
내 이름 기억하니?
그럼 당연하지.

하지만 그 이름은 고향에 남은 여자의 이름이 아니다.

고향에 남은 여자가 기억하는 도쿄로 돌아가는 여자의 이름도 도쿄로 돌아가는 여자의 이름이 아니다
(관객들이 혼란스러워 수근거리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랑 헷갈린 것 아닐까?
(그래. 아무래도 결혼하고 애도 낳고 살다 보면. 다들 그렇게 살다 보면. 다들 결혼으로 인해 성이 바뀌고 얼굴이 바뀌고 옷 입는 스타일도 바뀌고 다들 비슷해지면.)

나를 그 친구라고 생각해 봐
(나는 고향에 남은 여자의 얼굴을 보면서 논쨩을 생각한다.)
그 친구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해 봐
(나는 논쨩에게 하고 싶은 말을 고향에 남은 여자의 얼굴을 보면서 속으로 읊는다.)

(도쿄에 돌아가는 여자가 고향에 남은 여자를 보면서 뭐라고 이야기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도쿄에, 어딘가에 돌아가는 여자였다면

결혼 생활이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가족이 건강하기를
꾸준히 사진을 찍기를
도쿄에서 있었던 일들에 너무 상처 받지 말기를
그리고 이해해 달라고.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길어지니

고향에 남은 여자는 자신의 친구가 아님이 판명된 도쿄에 돌아가는 여자를 역까지 배웅해 준다
도쿄에 돌아가는 여자 또한 고향이 남은 여자가 자신의 전 애인이 아님이 판명난 마당에도 그 배웅에 행복해 한다

도쿄에 돌아가는 여자는 전 애인을
그래, 내가 그 아이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해 봐

(아직까지도 논쨩을 만나서 직접 미안하다는 사과는 할 수 없다. 전염병 때문에 논쨩은 너무나 멀리 있고, 딱히 전염병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 모든 이야기를 논쨩에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논쨩은 그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도쿄에 돌아가는 여자의 얼굴을 하고
고향에 남은 여자의 얼굴을 본다
거기에는 친구의 얼굴이 있다.

(이 만남은 거의 끝나가는데 전염병 이야기는 정말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둘이 타인을 대신해 새로 만나는 역은 센다이 역
거기에는 논쨩의 고향이 있다.

(2021)


이주연은 사회적 고립, 국경을 넘는 친밀감, 노동 불안정, 기술 발전, 산업 독성학과 몸 정치학 등을 포괄한 광범위한 리서치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분석적이면서도 시적인 논픽션 무빙 이미지를 연출한다.

Jooyeon Lee works with analytical yet poetic non-fiction moving image with expansive research and interviews to capture urban alienation, intimacy across borders, labour precarity, technological progress, industrial toxicology and body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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