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진술서

진술인(증인)의 인적사항
이 름: 정 현
생년월일: 1993. 04. 17.
주 소: 서울 노원구 중계동 000
전화번호: 010-0000-0000

1 진술인은 지윤정과 김선오의 직장 동료로서 다 같이 OO시의 시립어린이미술관에서 일하고 있으나 지윤정은 이직 준비로, 김선오는 계약 만료로 퇴직이 예정되어 있었고 이 둘이서 부업 중이라는 것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2 지윤정과 김선오가 퇴사한 약 1주 뒤 새벽 한 시 즈음 지윤정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자전거를 타고 월계역 근처의 월계교로 이동했습니다. 후에 지윤정이 동료들 중 진술인을 부른 이유는 진술인이 그근처에서 제일 가까이 살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3 월계교에 도착하니 지윤정이 수풀 속에서 무언가를 찾다가 자전거의 플래시라이트를 보고 곧바로 일어섰는데 이미 겉옷에 피가 조금 묻어 있었으며 손에는 커다란 덫을 들고 있었습니다.

4 지윤정은 진술인에게 가까운 도로까지 김선오를 옮겨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김선오는 월계교 기둥 근처(자료 1 첨부)에 앉아있었는데 얼굴 왼쪽 밑에 할퀸 자국과 손목에 동물에게 물린 자국이 있었습니다.

5 진술인은 당황해 119를 부르려 하였으나 지윤정에 의해 제지당해, 김선오를 옮겨 달라는 요청에 대해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중랑천 근처에서 야생 동물 사냥을 하다가 김선오가 동물에 물린 것이라고 지윤정이 답변했습니다. 지윤정이 119를 부르지 못한 이유는 수렵 면허 없는 자의 야생 동물 수렵은 불법이기 때문입니다.

6 지윤정은 흰담비를 잡아 수렵 업자에게 넘겨 파는 부업을 하고 있으며, 이직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보험 삼아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김선오는 대학원 학비를 벌기 위하여 같이 부업을 하고 있는 거라고 지윤정이 대신 대답했습니다.

7 진술인은 더 이상 이 둘의 일과 엮이고 싶지 않아 돌아가려 하였으나 지윤정이 사정사정을 하여 김선오만 옮겨달라고 하였고 이에 따라 지윤정과 함께 김선오를 부축하려 하였으나 김선오가 다른 사람의 눈에 띄는 것을 두려워 해 도저히 밝은 곳으로 옮길 수 없었습니다.

8 지윤정은 진술인에게 김선오를 맡겨 놓고 덫을 찾으러 가야겠다고 했습니다. 담비가 걸린 덫이 있으면 그 소리 때문에 일반인에게 들키기 쉽기 때문인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담비를 죽이던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때문에 진술인과 지윤정은 말싸움을 시작했습니다.

9 진술인은 지윤정에게 이직에 자신이 없으면 지금이라도 사직서를 철회하라고 설득했으나 지윤정은 거부했습니다. 말싸움을 하다가 지윤정이 “석사를 왜 땄냐고요. 지금 생각하면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바락바락 부모랑 싸워서 석사를 왜 땄을까.”라고 말해 안타까운 마음에 지윤정을 돕기로 하였습니다.

10 김선오를 가까운 벤치(자료 2 첨부)로 옮겨 물린 부분을 패딩으로 가린 뒤 앉아 있게 한 다음 지윤정과 함께 월계교 일대를 돌면서 동물 덫을 확인했습니다. 철물점에서 파는 고양이 잡는 덫(자료 3 첨부)이었는데 총 14개의 덫 중 3개의 덫에 담비가 잡혀 있었습니다. 모두 다 흰담비였습니다.

11 지윤정은 흰담비는 모피 코트의 재료가 된다고 진술인에게 설명했습니다. 세 마리 다 살아 있는데 지윤정이 장화를 신은 채 강으로 덫을 들고 들어가 흰담비를 익사시킨 뒤 포대 자루(자료 4 첨부)에넣고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있는데 누군가가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12 진술인과 지윤정이 아까 전 김선오를 앉혀 두었던 벤치로 돌아갔으나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포대 자루에 흰담비를 넣은 채 근처를 다시 돌며 김선오를 찾았습니다. 진술인은 김선오의 이름을 불렀는데, 지윤정으로부터 제지당했습니다.

13 하나의 모피 코트를 만들기 위해서 수십 마리의 흰담비가 희생된다고 합니다.

14 지윤정은 특이한 소리의 휘파람을 불면서 김선오를 찾았습니다. 그 소리는 짧은 휘파람 세 번 긴 휘파람 세 번 또 짧은 휘파람 세 번입니다.

15 녹천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공터(자료 5 첨부)에 김선오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진술인과 지윤정이 멀리서 확인해 보니 김선오는 얼굴과 목 부근을 심하게 긁고 있었습니다. 진술인이 김선오의 목 부근이 심하게 부어 올라 있는 것을 보고 지윤정에게 가까이 가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지윤정은 일종의 알레르기 증세라고 주장했습니다.

16 진술인이 정말 알레르기 증세냐고 큰 소리로 김선오에게 외쳐 묻자 김선오가 진술인과 지윤정이 있는 쪽을 쳐다보고는 그대로 뛰어와 지윤정의 오른손을 잡아 올렸습니다.

17 지윤정은 당황하였고 진술인은 그대로 월계역 쪽으로 다시 뛰어 도망갔습니다. 후에 확인해 보니 김선오가 지윤정의 목 왼편을 물어뜯어 상해를 입혔습니다.

18 김선오가 지윤정을 놓고 진술인을 쫓아 와 진술인은 당황한 나머지 옆에 있던 콘크리트 파편으로 김선오의 후두부를 쳤고 김선오는 쓰러졌습니다. 진술인은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 경찰에 신고를 하였으나 이미 최초 발견자가 신고를 한 상태였습니다.

19 김선오는 후두부에 손상을 입었으나 사망하지 않았고 대신 지윤정이 과다출혈로 사망했다는 것을 경찰을 통해 알았습니다. 그 이외의 가해는 없습니다.

20 나중에서야 김선오가 야생 동물에게 물린 것 때문에 광견병 증상을 보인 것이라는 걸 병원 측으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21 이상의 내용은 모두 진실임을 서약하며, 이 진술서에 적은 사항의 신문을 위하여 법원이 출석요구를 하는 때에는 법정에 출석하여 증언할 것을 약속합니다.

2020.01.20

진술인 정 현

(2020)


이주연은 사회적 고립, 국경을 넘는 친밀감, 노동 불안정, 기술 발전, 산업 독성학과 몸 정치학 등을 포괄한 광범위한 리서치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분석적이면서도 시적인 논픽션 무빙 이미지를 연출한다.

Jooyeon Lee works with analytical yet poetic non-fiction moving image with expansive research and interviews to capture urban alienation, intimacy across borders, labour precarity, technological progress, industrial toxicology and body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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