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가 러브 스토리
아버지가 태어난 게 1963년 대학에 입학한 건 1982년
그러면 할머니가 캐나다에 간 건 1984년 즈음이었겠지 할머니는 조지 오웰의 1984를 읽어는 보셨을까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이 죽은 게 1968년 그런데 할머니는 한복을 입고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 옆에 서 있다
방에 자랑스레 걸어 놓은 옛날 사진 속에서
할머니는 메일 오더 브라이드로 위장한 시간여행자 스파이였던 게 틀림없다
할머니가 정정해 주신다 그 사람은 케네디 동생이 아니라 부시 동생이라고
할머니는 정정한 메일 오더 브라이드였던 게 틀림없다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국인이 우리 가족 앞에 나타난다
서카는 살아있냐고 당신이 서카의 아들이냐고 네가 서카의 손녀냐고
그 외국인은 아주 다정하고 늙은 백인 캐내디언이고 퀘백에서 메이플 시럽 사업을 하고 있다 이름은 존 어쩌구이다
존은 영어로 묻는다 이 가족 중에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내가 손을 든다 이 순간만을 기다리며 해커스 토익 문제집을 풀었기 때문에
존 어쩌구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사과하러 온 자신을 플리즈 포기브 미 라고 말한다
손찌검을 했던 걸 플리즈 포기브 미
할머니가 abuse라는 단어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손찌검으로 통역해야만 했다
할머니가 한국에 돌아왔던 건 1990년 즈음일까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자는 존 어쩌구의 제안에 할머니는 나에게 짐을 챙기라 한다
아버지는 1984년 이래로 할머니를 좋아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딸이 아니라 서카와 존 어쩌구의 손녀로
퀘백에 있는 메이플 시럽 사업을 물려받으러 간다
트윈 픽스에 나오는, 홍콩인 조시 패커드처럼 짧은 머리를 하고 옷을 멋있게 입고 사업 운영에 힘을 다 할 것이다
어 댐 파인 메이플 시럽! 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제품 영업도 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로 비행기 안에서 결정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을 사지 않았으니까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