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람
한국의 노인들은 걷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나 보군요. 아마 좌식 생활 때문이겠죠. 동네마다 차도로 인도로 자전거 도로로 내달리는 어르신들의 전동 휠체어 최후의 레이스를 펼치는 강인한 전사들. 여기는 종말 직전의 서울. 글쎄요 몇 년 전에는 전동 휠체어가 이렇게 흔하지 않았어요. 언제부턴가 할아버지들은 다들 타고 다니네요. 길가에 장애물이 가득해도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도로의 턱 때문에 덜컹거리는 노후 계획. 어쩌면 이것이 서울 사람의 최종 진화형이 아닐까요. 저도 나이가 들면 전동 휠체어를 살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아직 진화가 더딘 인간이라 두 번 이상 지하철을 환승해야 할 때는 무조건 실수하게 되어 있다 그런 나를 삼십 분도 넘게 기다려준 외국인 친구는 땀을 뻘뻘 흘리고.
아니 저것 보세요. 서울에도 버려진 전동 킥보드를 볼 수 있군요. 뻘뻘 흘리던 땀을 닦으며 외국인 친구는 쓰러져 있는 전동 킥보드를 가리킨다. 이걸 타고 롯데 타워까지 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스마트폰에 처음 보는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는다. 종말을 알리는 롯데 타워가 태양빛을 반사하고. 나는 핸들을 잡고 엑셀을 눌러 사용법을 익혀 낸다. 반쯤은 떠 가는 듯한 바퀴가 부드러운 마찰음을 내고. 겨드랑이에 맺혀 있던 땀이 식는 것 같아 상쾌해진다. 저 멀리 가락시장에서 풍겨 오는 피 냄새 야채 냄새. 이 동네에는 정육 시장이 있어요. 여기에서 서울 곳곳의 고깃집으로 도축된 소와 돼지를 옮긴답니다. 부루탈하고 참 좋지요. 전동 킥보드에 올라선 나는 소와 돼지가 죽어 가는 종말 직전의 서울을 가로지르는 관광 가이드.
갑자기 우리는 오르막길을 맞닥뜨리고, 삐질삐질 올라가던 전동 킥보드는 점점 느려지더니 힘없이 쓰러지고 만다. 저기… 이 킥보드 배터리가 다 된 것 같아요. 킥보드를 그 자리에 세워 놓고 떠나고 싶으나 어플 속의 지도를 보니 여기는 킥보드를 주차할 수 없는 지역이다. 일단 이걸 끌고 올라가야겠어요. 말라 붙은 겨드랑이에서 다시 땀이 흐르고. 배터리가 죽어 버린 전동 킥보드는 서울 생활보다 무겁다. 저희 어머니는 인생이 등산과 같다고 하셨지요 올라갈 때는 까마득하게 힘드나 내려올 때는 순식간에 내려온다고. 고작 동네 뒷산만 오르면서 그런 말을 했다니까요. 중얼거리는 내 옆으로 전동 휠체어에 탄 노인이 달려 나아간다 서울 사람에게 종아리는 필요 없다는 듯이. 배터리가 다 되어 길 한가운데에 멈춰 선 전동 휠체어는 본 적이 없다. 이것이 바로 서울 사람의 최종 진화형.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