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나

도쿄에서 서울로 돌아 왔을 때 머리맡에 네 사진을 붙여두더니 네가 곧바로 꿈에 나왔어. 가슴에 뾰루지가 우둘투둘 나 있더라고 그걸 만지다가 그대로 손을 갈비뼈 안으로 넣어서 심장을 쥐었지

그래서 도쿄로 전화를 걸어 너의 말을 받아 적었는데

도쿄에 가서 보니까 진짜로 너의 가슴에는 뾰루지가 많이 나 있었다 등 아래 몽고반점 꼬리뼈가 남은 흔적. 너의 누나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부모님이 누나 이야기를 두 번 다시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누나는 왜 죽은 건지 누나는 언제 오는 건지 너는 알고 싶어한다 자신이 누나를 죽인 것인지 자신도 누나처럼 죽는 것인지도

누나가 항상 코에 호흡기 같은 걸 끼고 있었는데 가끔씩 그게 빠지기도 했거든
혹시 내가… 그 호흡기를 실수로 빼 버린 것이 아닐까?

도쿄에서 서울로 이사 왔을 때 머리맡에 네 사진을 붙여두었다 그랬더니 너가 곧바로 꿈에 나왔다. 가슴에 우둘투둘한 뾰루지가 나는 꿈을 쓰레기로 가득 찬 너의 방이 그대로 지진으로 쓰러져 불타오르는 것을. 계시몽 속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사랑은 언제 오는 것인지
야 너 참회하고 싶은 거지?

아직도 너희 본가에는 어렸을 때 죽은 누나의 사진이 남아 있다 그 사진 속 누나는 하얀 고양이를 안고 있다 누나도 너도 떠났는데 고향에 남은 너희 할머니는 아직도 너를 어린애라고 생각하고는 한다 네가 화장실에 갈 때마다 따라 가서 지켜봐 주고 있다 할머니는 화장실 앞에 서서 묻는다 얘야, 느이 누나 어디 갔지?

너희 누나 이름은 영나라는 것을. 가끔씩 자기 전 꿈 속에 어린 영나가 나올까 싶어서 영나의 이름을 부르며 잔다는 것을

아직도 너희 본가에는 어렸을 때 죽은 누나의 엑스레이 사진이 남아 있다 그 집에는 이제 하얀 고양이가 아니라 얼룩 고양이가 산다

(2020)


이주연은 사회적 고립, 국경을 넘는 친밀감, 노동 불안정, 기술 발전, 산업 독성학과 몸 정치학 등을 포괄한 광범위한 리서치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분석적이면서도 시적인 논픽션 무빙 이미지를 연출한다.

Jooyeon Lee works with analytical yet poetic non-fiction moving image with expansive research and interviews to capture urban alienation, intimacy across borders, labour precarity, technological progress, industrial toxicology and body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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