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하나씩

1

넌 부모님이랑 같이 사냐?

문 주임은 운전하며 나에게 물었다. 자동차 안의 어색한 정적을 깨는 첫 질문이었다. 우리는 하계역 근처를 산책하는 늙은 부부를 몇 쌍이나 지나쳐 갔다. 노원구 전체가 베드타운이기 때문인지, 어딜 가나 노인들만 눈에 밟혔다. 주위 사람들에게, 요새는 원자력병원에 외근을 나간다고 하면 다들 방사선을 측정하러 가냐고 놀리고는 했다.

나는 문 주임의 대답에 답하지 않았다. 문 주임은 인서울 대학까지 졸업해서는 몇 년 백수짓을 하다가 우리 회사에 입사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머리 하나는 착실하게 돌아갔지만, 뭔가 믿을 수 없는 구석이 있었다. 같이 점검을 나가던 단짝 김장호를 떠올렸다. 평소 같으면 나와 김장호 둘이서 지하철을 타고 점검할 병원으로 이동했을 터였다.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 거 싫지 않냐?

안 싫은데요. 돈 벌어서 학자금도 갚아야 하고.

김장호가 결근한 지 사흘째가 되어 가고 있었다.

2

소등 상태 확인.
점검 스위치 동작.
적합에 동그라미.
적합에 동그라미.
그 다음에 손으로 쓴다.
배전반내 변류기 열화상 측정하였으나 이상이 없슴을 확인함.

3

윤병주, 결근하는 김장호 말인데, 어디로 갔는지 짚히는 게 있어?

김장호가 무단 결근한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부장이 사무실로 출근한 나에게 아침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봤다.

잘 모르겠는데요.

나는 부장의 옆 자리인 문 주임을 곁눈질로 보면서 답했다. 문 주임은 무표정으로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 봤다.

나는 다시 답했다. 주말 조기축구부에 나간다고 했어요. 집은 시흥이고요.

김장호는 나보다 두 살이나 어렸지만 고등학교에서 현장실습생 신분으로 입사했기 때문에 연차로 보면 나보다도 훨씬 선배였다. 이 회사의 가장 어린 사원이었는데도 이미 25살이었다. 문 주임도 마흔에 가까웠지만 과장이나 부장 옆에 있으면 아직도 새파란 애송이 같았다. 처음 입사한 날부터 지금까지 회사생활의 모든 것을 김장호가 직접 알려준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조언은 이것이다.

이런 일이다 보니 여러 건물을 돌게 되는데요. 국정원에 점검을 나가기로 하면 절대 다른 건물은 점검을 돌 수 없어요. 보안 문제 때문에 국정원에 점검을 나가다가 다른 건물로 옮길 수도 없고요. 그러니까, 국정원에 한 번 점검을 나가기 시작하면 회사를 관둘 때까지 국정원만 돌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국정원으로 발령받지 않도록 하세요.

그날 저녁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김장호의 새끼손가락이 발견되었다.

4

나와 김장호는 세브란스 병원을 외근을 가 본 적이 딱 두 번 밖에 없었고, 심지어 그건 지난 여름이었다. 그것도 실은 스케쥴에 혼동이 생겨서 다른 조 대신에 간 것이었다. 우리는 서울에 있는 각종 빌딩과 병원들, 연구소, 대학 캠퍼스, 또 관공서 등을 돌면서 전기 배선을 점검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커다란 기계의 각종 부품과 계기판을 보면서 깜박거리는 빛을 보는 일의 연속일 뿐이었다. 여기저기에 떠 있는 숫자를 기입해 회사에 전달한다. 혹시 숫자가 잘못되었다면 배선판을 열어 숫자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도록 뭔가를 만진다. 가끔씩 형광등을 갈아달라고 하는 작자가 있으면 그냥 갈아 준다. 끝.

2인 1조로 외근을 나가야 하는 업무의 특성상, 우리는 곧바로 하루의 대부분을 같이 보내는 단짝이 되었다. 그런 김장호가 갑자기 무단 결근을 하다가 웬 병원에서 새끼손가락만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김장호가 오랜 기간 동안 회사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자, 새 사원을 뽑을 때까지만 억지로 문 주임과 나는 함께 외근을 나가는 단짝이 되었다.

저는 요새, 그 뭐냐, 유기농 사업에 관심이 있어서요. 블루오션이라잖아요. 그래서 이직해볼까 합니다.

우리 같은 인간들은 생협에 취직해도 택배 일 밖에 안 시켜줘.

항상 이렇게 초를 치는 문 주임과 함께 말이다.

5

윤병주 씨는 김장호 씨와 함께 외근을 나가던 동료였고, 문형곤 씨는 점검 기사들 주임이었다는 거죠. 어차피 그냥, 관례적으로 물어보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

살다살다 동료가 새끼손가락만 남기고 실종되어 경찰서에 갈 줄은 몰랐다.

당일 김장호는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저와 곧바로 외근 장소에서 만났습니다. 오전에는 을지로에 있는 병원에, 오후에는 회기역 근처의 대학에 외근 갔습니다. 대학 캠퍼스가 넓어 야근을 했습니다. 그 뒤 사무실로 돌아갔으나 빌딩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밖에서 담배 피던 문 주임에게 점검 서류를 건네준 뒤 빌딩 앞에서 헤어졌습니다. 김장호는 지하철을 타러 역 쪽으로 향했고...

사무실에는 왜 들르지 않았습니까?

지하철 막차 시간이 가까워져서, 사무실에 들르면 김장호가 집에 못 갈 수도 있었거든요.

경찰은 나를 수상쩍다는 듯 쳐다 봤다.

윤병주 씨, 당신 집이 신촌에서 걸어서 한 시간 즈음이면 닿는 거리라는 것 알고 계시죠?

네.

걸어서 그 병원까지 가 본 적 있습니까?

아니오.

지하철 막차보다 버스 막차가 더 늦다는 것 아시지요?

네.

집에 부모님이 계셔도 밤에 몰래 밖에 나갔다 오고, 그러죠?

안 그럽니다.

6

관공서: 주간 주간 당직 비번 휴무 휴무 휴무 (쉬는 날이 엄청 많음)
당직 근무 하면 하루종일 인강 볼 수 있음
연구소: 주간 주간 야간 야간 비번 휴무 휴무
일이 바빠서 인강은 못 봄
병원, 캠퍼스: 매일 건당으로 처리함 (전부 다 주간 평일)
일이 바빠서 인강 절대 못 봄

둘 다 당직 때는 밤에 건물 돌고 아침에 퇴근함
엄마 때문에 당직 말고 야간만 하고 막차 타도 되냐고 부탁하기
업체만 바뀌면서 계약 연장하는 시스템 (방통대, 전문대 가능)

전기 기사
장점: 일이 편하다. 시간이 많다.
단점: 3d 직업. 건강을 망칠 수 있다. 급여가 적다. 기술직 무시. 처우가 좋지 않다.
요새 전기 기사 자격증 인기 많음.
문주임 말로는 이민 가능하다고 함. 정년 없음. (문주임은 싸패라서 믿을 수 없음)

공부를 계속 해야한다.

7

아니, 그러니까 우리 회사는 그, 애들 위험한 데 보내고 이런 데 아니라니까 그러네. 손가락이 왜 잘려 있는지는 저희도 모른다고요.

김장호가 새끼손가락만 남기고 사라졌다는 소식은 여러 신문사에게 꽤 재미있는 먹잇감을 던져 줬다. 몇 년 전 이미 김장호와 같은 현장실습생 신분의 젊은이가 역사에서 사고를 당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장은 사무실 복도에 서서 전화 너머로 어딘가에 항의하고 있었다. 일을 돕는 여직원은 복도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기자들은 조각난 몸을 너무 좋아한다.
김장호의 새끼손가락이 으깨진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잘려있었다는 데도 그 이야기를 너무 좋아한다.

기자들 때문에 사무실이 잠시 시끄러웠으나, 지금은 몇몇 직원들의 연락처로 스팸 같은 문자만 오고 있을 뿐이었다. 이미 전 직원에게 함구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부장은 전화를 끊고 나와 문 주임 자리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당신 둘 미쳤어? 형사가 이것저것 묻는다고 다 답하고. 형사들이 점검 기관 다 돌게 만들고. 회사 이미지가 실추된단 말입니다. 무슨 뜻인지 알고는 있어?

부장이 나와 문 주임에게 호통을 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직원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잡아뗐는데, 나와 문 주임만 아무 생각 없이 모든 걸 속속들이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내일부터 문 주임은 병주 데리고 국정원으로 가도록 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하루에 하나씩만 외근 돌아. 알았어?

국정원에는 가지 않도록 하라던 김장호의 조언이 유언처럼 들렸다.

8

너는 왜 대학도 안 가고 바로 취직했냐?

어머니가 아파서요.

지난 여름, 나와 김장호가 세브란스 병원에 외근 나갔을 때였다. 야간 근무라 병원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1층에 마련된 벤치에 몇몇 간병인들이 모여 누워 쉬고 있을 뿐이었다. 인공 정원이 마련되어 있어 플라스틱 재질의 야자수가 빛났다.

돈 벌어서 어머니 효도해 드리려고?

아니요. 돈 벌어서 집 나갈 겁니다. 벌써 많이 모았습니다.

어머니는 이런 병원 모시고 너는 따로 살게?

김장호는 말이 없었다. 인공 정원에서 슬리퍼를 신고 배회하는 간병인을 보니 마치 열대 지방의 다른 나라에 여행 온 것 같았다.

9

국정원 가는 거 너무 피곤하다. 어떻게 하면 국정원 안 갈 수 있냐.

외국인이랑 결혼하면 국정원은 출입을 안 시켜 준대요.

나도 어디 베트남을 갔다와야겠군.

국정원에 가도록 지시 받은 건 여기에 입사해서 일어난 일 중 가장 나쁜 일이었다. 전기 점검을 위해 모든 방을 하나씩 돌도록 설계되어 있었는데, 애초에 나와 문 주임 둘이서 돌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또 방마다 들어가 점검을 하겠다는 양해를 구하고 진행해야 하는데, 외부인이 함부로 낄 수 없는 중요한 회의가 진행되는 곳에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회사 측으로 항의가 들어오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해서 회의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점검을 진행할 수도 없었다. 벌써 몇 번이나 항의 받은 우리들은 결국 새벽에 점검을 나가는 것으로 결론내려졌다. 연속 당직을 서라는 거나 다름 없는 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문 주임이 차를 가지고 있다는 거였다. 만일 내가 혼자 외근 가는 것이었다면 새벽마다 택시를 타고 국정원에 도착했어야 할 텐데, 회사는 택시비를 지원해주지 않았다. 문 주임은 하품을 참으며 구룡터널을 지났다.

문 주임님.

왜.

김장호 자살한 거예요?

문 주임은 말이 없었다.

김장호 지하철 타고 집에 간 거 맞아요? 문 주임님 차가 아니라?

문 주임은 조금 뜸을 들이고는 답했다.

그 날 내가 집까지 태워 줬다. 어머니가 치매가 심해졌다고 하더라.

왜 하필이면 세브란스 병원에서 김장호의 새끼손가락이 발견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김장호가 새끼손가락 하나만 남겨 놓고 어디에 가 버렸는지 알 길이 없었다.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는 계기판에 떠 있는 숫자를 옮겨 적거나 배선을 고치는 일 밖에 없다. 커다란 기계에 손가락이 깔릴 일도 없다. 전기 기사 일은 그래서 좋은 거야. 감전은 되어도 팔다리는 안 잘린다. 처음 입사할 때 문 주임이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야 윤병주. 뭔가를 정해 가는 게 중요한 거야. 우리도 뭔가를 정해 갑시다. 오케이?

문 주임은 김장호가 자기 손가락을 자른 뒤 어딘가에서 자살했으리라고 확실하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차는 구룡터널을 아직도 가로지르고 있었다.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9

국정원은 마치 다리 다섯 개를 가진 문어처럼 생긴 건물이었다. 다섯 채의 커다랗고 하얀 건물들이 반원을 이루며 산재해 있고 둥그런 또 하나의 건물이 이 다섯 채를 잇고 있다. 근 일주일째 여기로 출근하며, 과연 방이 몇 개나 있을지, 내가 못 들어가는 방도 있을지 궁금해졌다. 아직도 점검할 곳은 한참 남아 있었다. 여기는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곳이었다. 피곤해서 한숨을 쉬는 나에게 문 주임이 말했다.

다른 곳으로 외근 나간 조는 하루에 하나씩 못 돌아. 여러 군데 외근하고 있을 거야. 우리는 하루에 한 채씩만 한다고 생각하자고.

하루에 한 채 못하잖아요.

이 새끼가.

기계실의 배관 배치도를 본다. 다섯 채의 건물마다 기계실이 하나씩 할당되어 있고, 그 다음 기계실마다 연결되어 있어서 기계실로만 걸어도 건물의 다른 편으로 곧바로 갈 수 있었다. 배치도를 봐도 과연 방이 몇 개나 있는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고등학교에서부터 전기를 공부한 김장호는 아마 알 수 있었을 터다.

문 주임은 사다리 위에 올라간 채로 한 손은 천장의 먼지 덮힌 철봉을 잡고, 한 손에는 테스터기를 들고 있었다. 문 주임은 똑같은 문과생 출신이면서도 자격증만 따고 입사한 나에게는 아직도 일을 잘 시키지 않았다. 인사과 서류를 같이 정리해 주다가 문 주임의 기록을 보았을 때의 일이다. 문 주임만 매년 사진을 갱신했는데, 모든 사진에 이가 보이게 웃으며 찍혀 있었다. 그 때문에 나와 김장호는 문 주임을 ‘싸패'라고 부르곤 했다.

너는 매뉴얼대로 알려 줘도 제대로 못 하잖아.

아닌데요. 이제 잘 하는데요.

소등 상태 확인.
점검 스위치 동작.
적합에 동그라미.
적합에 동그라미.
그 다음에 여기에 쓰면 되잖아요. 안정기 측정하였으나 이상이 없음을 확인함.

김장호는 무조건 ‘음'을 ‘슴'으로 잘못 적었을 것이다.

10

지난 여름, 나와 김장호가 세브란스 병원에 외근 나갔을 때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는데 다른 층에서 한 레지던트가 커다란 스티로폼 박스를 들고 들어왔다. 한밤중이라 아무도 탈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던지, 레지던트는 우리를 보자마자 깜짝 놀랬다. 우리가 내릴 층 바로 윗층에서 레지던트가 내리자 김장호는 나에게 다시 물었다.

저 의사가 뭘 들고 있던 겁니까?

쟤는 의사가 아니라 레지던트고. 안에 장기라도 들어있었던 것 아니야?

레지던트가 스티로폼 박스에 장기를 담아 어디로 가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었다. 김장호는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김장호는 나나 문 주임이 그저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을 할 때가 있었다.

장기 팔면 이민 갈 수 있습니까?

헛소리 하네.

11

김장호네 어머니, 치매가 심해져서 집에서 작두로 지푸라기를 썬다고 하더라.

웬 작두예요?

어렸을 때 집이 약방을 했었대.

생각해 보면 나나 김장호, 그리고 문 주임까지, 회사의 많은 직원들이 나이를 먹고도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문 주임은 그 나이를 먹어서까지 뭘 갚으려고 부모와 함께 사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김장호는 치매인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빨리 취직해 일하고 있었다. 돈을 벌어서 집을 나갈 것이라고 나에게 말했었다. 어쩌면 김장호는 손가락 하나만 어머니에게 남기고 도망간 것이 아닐까 나는 생각했다. 문 주임의 작두 이야기는 지어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의문도 들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창문 너머의 풍경이 푸르스름해졌다.

슬프냐?

아뇨.

그냥 멀리 이민 갔다고 생각해.

문 주임은 이가 보이게 웃었다.

(2019)


이주연은 사회적 고립, 국경을 넘는 친밀감, 노동 불안정, 기술 발전, 산업 독성학과 몸 정치학 등을 포괄한 광범위한 리서치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분석적이면서도 시적인 논픽션 무빙 이미지를 연출한다.

Jooyeon Lee works with analytical yet poetic non-fiction moving image with expansive research and interviews to capture urban alienation, intimacy across borders, labour precarity, technological progress, industrial toxicology and body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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