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구멍 귀

1.

약 2년 반 만에 한국에 돌아와 충격을 받는 것은 오만 곳에서 들리는 소리다. 엄마의 설거지 소리가 아침부터 집 안을 쨍그랑! 하며 울리고, 온돌을 돌리는 보일러 소리가 연일 끊이지 않는다. 집 밖을 나가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구사하는 한국어 대화를 오랜만에 듣는다. 길거리에는 시대를 변치 않는 욕설도 떠다니지만 내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신조어도 들린다. 공중화장실에서는 카악! 하고 가래침 끓는 소리를 적나라하게 들을 수 있다. 버스와 지하철에서, 길가의 가게에서 들리는 광고의 소음은 런던보다 그 데시벨이 더 높다. 노이즈 뮤지션 홍철기는 한 워크샵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필드 레코딩을 하면, 어디를 가든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의 소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루만 밖에서 걷다 와도 완전히 지친 상태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데, 더 이상 귀가 들리지 않는 아빠에게 고함을 치는 엄마의 목소리에 다시금 여기는 서울이라는 자각을 하게 된다.

아빠는 몇 년 전부터 청각을 잃기 시작해, 작년에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이미 보청기 없이는 어떤 소리도 듣지 못하는 농인이 되어 있었다. 아빠가 한창 청력을 잃어갈 때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 아빠가 힘이 다 빠진 것 같다.” 확실히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음주 운전을 하거나 술에 취한 채로 동물을 괴롭히던 아빠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자격지심으로 힘이 넘치면 넘쳤지 힘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젊을 때부터 수영과 검도를 즐기고, 기분이 수틀리면 자신의 아이들에게 “내 맘대로 널 죽일 수도 있다”고 위협하던 아빠에게는, 자신의 신체는 영원히 정상이고 남성적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그 믿음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아빠는 큰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자기가 호령하던 시절만 그리며 앉아 늙을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밥 하는 법을 배울 것인가. 그리고 아빠는 어느 정도 중간 지점의 선택을 한 것 같다.

더이상 귀가 들리지 않게 되자 아빠는 은퇴를 하고 다른 사업장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게 되었다. 요새 일하는 사업장에서는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아빠는 수화를 새로 배우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다. 수화 또한 다른 외국어와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 농인학교나 다른 농인들을 통해 배우는 게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수화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된다 하더라도 과연 아빠 같은 사람이 타인 앞에서 수화로 대화를 할 만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밖에 나가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다른 사람들의 말을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할 때, 아빠의 얼굴에서 수치심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빠는 아직도 자신이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최근의 아빠를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조용히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큰 소리로 고함을 치는 것이다. 보청기가 오작동하여 불쾌한 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빠가 끼고 있는 보청기는 인간의 청각이 탐지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소리를 따라하지 못한다. 잡음과 전자음을 참고 청인의 사회에서 살아갈지, 그 보청기를 끄고 고립을 견딜지 아빠는 매일 고민하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사람이 나이를 먹는 것에 고통을 느끼는 걸 보는 것은 쾌감과 슬픔을 같이 동반하는 것 같다.

다리우스 마르더 감독의 영화 ‘사운드 오브 메탈’에서는 청력을 잃은 헤비메탈 드러머가 인공와우이식 수술 뒤 들리는 인공적인 소리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청인으로 태어나 농인이 되어가는 사람이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은 상실감이라고 한다. 더 이상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 이에 따라 지금까지 쌓아왔던 경력과 사회 생활에 큰 타격을 입는다는 것, 그리고 정상적인 신체로부터 졸업하고 비정상적인 신체로서 살아가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는 것. 주인공 루빈은 다른 농인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그 생활에 적응하기보다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인공와우를 이식받고자 한다. 함께 여행용 밴에서 지내며 연주를 하던 여자친구가 사실은 프랑스 상류층 출신이라는 것을, 그녀와 같이 밴드 투어를 다니며 방랑하는 생활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영화는 루빈의 인공와우이식 수술과 연관지어 그려내고 있다.

루빈은 청력을 잃음으로서, 그가 기존에 고수해왔던 메탈 뮤지션의 생활 방식과(현재까지도 헤비 메탈 씬의 창작자와 소비자 대부분은 노동 계층이다) 과거에 겪었던 마약 중독 문제에 자기만의 안녕을 고해야 한다. 루빈이 거처를 옮겨 생활하게 된 농인 커뮤니티의 지원자 조는 루빈에게 인공와우이식 수술을 받지 말라고 권한다. 청력의 상실을 신체의 부족함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정체성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공와우이식 기술이 발달한 뒤, 농인 공동체가 어떻게 변화할 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공와우이식 기술은 아직 불완전하기 때문에 들리는 소리가 굉장히 인조적이고 불편감을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농인의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를 위해 인공와우이식 수술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농인의 귀가 청인의 귀보다 못하다는 관념, 그 귀를 ‘고쳐’ 청인의 사회에 편입하게 해야 한다는 관념은 어디에서 오는가?

영화의 제목 ‘사운드 오브 메탈’은 이런 내용 때문에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 ‘메탈’은 루빈이 듣고 연주하는 가장 시끄러운 음악 장르 중 하나인 헤비메탈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루빈이 인공와우를 이식받은 뒤 들어야 하는 인조적인 소리를 가리키기도 한다. 인공와우의 소음이 청각 상실 뒤의 고요함보다 더 우월하다는 생각은 청인의 단순한 편견이라는 것을, 소리를 듣지 않게 된다고 해서 완전히 고립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영화는 그리고 있다.

2.

아빠는 내가 일곱 살이 될 때까지 서울에서 혼자 살았기 때문에, 나와 내 동생은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부산의 이모 집에서, 그리고 가끔씩은 엄마의 집에서 보냈다. 어느 날부턴가 집안의 어른들이 “주연이는 초등학교부터는 서울로 이사 가서 살게 된다. 아빠와 할머니도 같이 살 거다.”고 말하기 시작했을 때 느꼈던 기대와 일말의 공포감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 해 가을, 부산에 우리를 보러 온 아빠와 함께 온 가족이 차를 타고 엄마네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빨간 불이 켜지자 멈춰 선 차에 갑자기 쾅! 하는 충격이 느껴진다. 머리 뒷부분에 그 충격을 그대로 느낀 내가 잠에서 깨고 동시에 엄마가 비명을 지른다. 뒷차 운전자가 술에 취한 상태로 우리 차에 추돌해 버렸다!

그 뒤 서울로 이사 가기 전까지 몇 번 대학 병원을 다니며 통원 치료를 했는데, 의사가 CT 스캔 사진을 아빠에게 보여 주며 내 뇌에 대해 설명하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 기간 동안 나는 두피와 귓속을 진물이 날 때까지 긁는 습관이 생겼다. 마치 머릿속에 뭔가 잘못된 게 있어서 그걸 파 내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아마 이모 집을 떠나 서울에서 엄마와 아빠가 함께 살 것이라는 것이라는 사실과, 예기치 못한 교통 사고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귓속에서 귀지가 조금이라도 나오면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를 푼 것 같은 시원한 느낌이 들어, 결국에는 귀지가 아니라 짓무른 딱지가 빨간 모래처럼 나올 때까지 쉴새없이 후벼팠던 기억이 난다.

그 시기에 엄마는 나에게 아동용 인체 해부도 책을 사 줬는데 사고의 큰 전환점이 됨과 동시에 몸 속에 관한 온갖 상상을 하기 시작하게 했다. 뇌에 연결된 감각 기관들은 뇌로 통하는 일종의 구멍이다. 하지만 귀 만큼 크고 명백한 구멍은 없다(사고로 후두부가 손상된 사람은 귀를 통해 그 피가 흘러나온다고 한다). 혹시라도 귓속으로 벌레가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달팽이관 안으로 진짜 민달팽이라도 들어간다면… 민달팽이가 거기에 집을 지어버린다면… 뇌 속의 통로를 따라 혈관 속으로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일곱 살의 어느 한낮, 나는 그 책들을 보며 거실 마룻바닥에 누워 내 몸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다. 팔에서 뛰는 맥박 소리, 이모의 가슴에서 나던 소리와 똑같이 두근거리는 내 심장 박동, 뱃속에서 창자가 꾸르륵거리는 소리, 너무 누워 있어서 머리가 아플 때마다 귓 속에서 들리던 지잉–거리는 소리… 귀를 통해 작은 벌레가 몸 속으로 들어가 그 바쁜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상상을 하며 낮잠에 들곤 했다. 낡은 보일러가 내던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기억 속에서 몸의 소리는 굉장히 시끄럽고 촉각적이었다.

그 뒤, 성장하면서 크고 작은 스트레스가 있을 때마다 피부를, 귓속을 진물이 날 때까지 헤집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어서 우울증과 공황을 겪을 때마다 귓속에서 심장 소리가 두근거리던 것을 기억한다. 한때는 심장에 문제가 있다고 오해할 정도였으니까. 스트레스로 배가 많이 아플 때는 길거리의 큰 소리나 영화관의 소음에 귀가 찢어질 것 같았던 적도 있다(배가 아픈 것 때문에 신청한 내시경 검사에서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자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마음이 슬프지만 우는 법을 모를 때는 위가 대신 울어줍니다’고 설명했다). 귀를 자주 만지면 감염될까봐,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유투브에서 귀청소 동영상을 대신 보기도 한다. 다행스럽게도 외이도염으로 병원에 가는 일은 지난 몇 년 간 없었다. 귀는 뇌로, 우리의 정신으로 통하는 가장 명백한 구멍임에 틀림없다.

작년에는 새 차를 산 친구와 함께 그 차를 타고 세차장과 터널 촬영을 간 적이 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우리는 기계식 세차장 내부로 들어가는 차 안에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늘은 맑지만 차는 젖어 간다. 물방울이 차 보닛을 때리는 소리가 마치 천둥 소리 같다. 우리가 차를 타고 지나온 길거리는 조용하기 그지없는데 세차 중인 차 안에서는 폭풍우가 들린다. 그 친구에게 이 차 안이 마치 우울증 같다고 나는 말했다. “바깥 세상은 조용하고 맑은데 마음 속에서는 비가 내리잖아.” 템즈 강 밑으로 지나다니는 터널을 운전해 이동하면서 찍은 푸티지와 녹음 파일을 들으면 그 비유가 더욱 명확해진다. 차가 터널을 지나가는 동안 우리는 불쾌한 소음과 악취를 견뎌야만 한다. 하지만 그 터널의 끝에는 빛이 있다.

한국에 돌아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나에게 말한다. “옛날에는 화가 가득 차 있었는데 이제 안 그러네.” 나는 장난처럼 답한다. “런던 가서 어른이 되어서, 화 조절하는 법을 배워서 그런가 봐.” 느린 속도지만, 확실히 마음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카운셀링과 약물 치료를 그만두지 말라고 나에게 잔소리하는 사람들은 주위에 여전히 있는 법이다. 좋은 마음에서 우러난 제안이라는 걸 알지만, 내 상태를 ‘고쳐서’ 과연 어디에다 유용하게 쓰는가? ‘고친’ 상태가 과연 좋은 상태인가? 무슨 마음 상태가 ‘고쳐진’ 상태인가?

요새도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슬픈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때 나는 상상한다. 귀를 통해 작은 벌레가 뇌 속으로, 몸 속으로 들어가 이 바쁜 시스템을 교란시키고 있다!

3.

현재는 남런던에 있는 동네 근처 영화관에서 거의 풀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다.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기 시작한 곳인데, 그 뒤에 여러 군데에서도 일해봤지만 이 영화관만큼 일하는 시간 조절이 쉬운 곳, 일하는 데에 있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곳이 별로 없었다. 낮에는 조금씩 작업을 하고 저녁에는 영화관에서 팝콘과 영화 티켓을 팔고 청소를 한다. 작년 말에 새로 들어온 직원이 있는데, 원래부터 여기에서 오랫동안 일하던 소꿉친구의 소개로 고용된 동갑내기 청년이다. 그 소꿉친구와 마찬가지로 북잉글랜드 더럼주 출신인데, 20대의 대부분 동안 마약 중독과 알콜 중독에 시달리다가 다 끊었다고, 같이 일하는 첫날부터 필요 이상으로 자기가 직접 친절하게 설명해 준 적이 있다. 몇 번의 사건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성격 좋은 동료로, 영화관 손님들에게 정말 인기가 많은 청년이다. 이 주변에선 전혀 들을 기회가 없는 억양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나 아직 아무 것도 안 먹었어. 내 ‘차’를 사야 돼. (I haven’t eaten yet. I need to buy me ‘tea’.)”

“오늘 밤엔 우리 ‘어무이’한테 전화할 거야. (I gotta call me ‘mam’ tonight.)”

한 번은 이 친구가 말을 멈추지 않고 특정한 소리를 자꾸 따라해 나를 겁먹게 한 적이 있다.

“... 오리가 정말 좋아. 애완 오리를 키울 거야. 부화장을 사서 오리를 부화시켜서 애완 오리를 키우고 싶어.”

“진정 좀 해. 최근에 이사 간 집은 어떠니?”

“너무 별로야. 내 방 옆에 온수 파이프가 있는데 누군가 물을 틀 때마다 끄윽! 하는 소리가 나고 내가 자려고 누워 있을 때마다 끄윽! 하는 소리 때문에 도저히 잘 수가 없고 그 끄윽!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끄윽! 소리를 들을 때마다 다 죽여 버리고 싶다고…”

결국에는 이 친구에게 조용히 하라고, 겁이 난다고 정색하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나보다 키가 머리 두 통은 더 큰 백인 남성이 나를 겁먹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친구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 친구는 자기가 자폐증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한다. 높은 음조의 소음을 못 견디기 때문이다. 영화관에서 일할 때 수시로 들어야 하는 유리병 버리는 소리를 못 참고, 지하철 역에서 나는 소음을 못 참고, 공연을 보러 가서는 특정 음계의 소리를 못 참아서 귀마개를 해야 한다고 한다. 유리병 버리는 소리를 못 참겠으면 영화관에 구비되어 있는 귀마개를 쓰면 된다고 하자 “그건 자폐증 귀마개잖아.” 하고는 무시해 버린다. 높은 음조의 소음은 누구에게나 짐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직접적인 위협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한 번은 병원에 가서 제대로 진단을 받는 게 어떻겠냐고 내가 제안한 적이 있다. “왜 굳이? 나는 내가 자폐증인 걸 아는데. 내가 이미 아는 걸 의사한테 가서 들어봤자 뭐가 달라져?” 하고 친구는 답했다. 자폐증 진단을 받아봤자 자폐증을 ‘고칠’ 수는 없다. 자폐증은 정상인의 정신보다 못한 상태도 아니며, ‘고쳐야’ 하는 상태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친구가 예전에 중독되었던 ‘스피드’는 암페타민이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그리고 가장 잘 팔리는 ADHD 치료제인 애더럴 또한 암페타민이다. 웃기게도 애더럴은 유럽에서 합법적으로 구하는 게 불가능한 약물이다. 내가 한국에서 처방받았던 알프라졸람 또한 영국의 NHS로는 처방받을 수 없는 약물이다.

내가 한국으로 출발하기 며칠 전, 길 건너편 펍에 피아노가 있다고, 휴식 시간에 그 펍에서 가서 피아노를 치고 오겠다고 이 친구가 고집을 부린 적이 있다. 우리가 일하는 영화관은 휴식 시간을 40분 밖에 안 주는데도 불구하고 진짜로 그 펍에 가서 피아노를 치고 오고는, 기분이 좋다며 저녁 내내 신이 나 있었다.

“정말 피아노만 치고 왔니? 술 마시지는 않았지?”

“정말로 피아노만 치고 왔어. 두 번 다시 술은 안 마실 거야.”

이 친구의 말을 믿지 못하는 내 마음이 못났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결국 못난 사람처럼 그 펍에 가서, 피아노를 치러 왔던 금발 청년이 다시 오면 술은 팔지 말아달라고 사정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서울 본가의 이부자리에 누워 그 친구가 런던의 펍에서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려고 한다. 낡은 보일러가 내는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구의 내핵을 거쳐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 친구는 오늘도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렇게 믿는다.

(2023)




이주연은 사회적 고립, 국경을 넘는 친밀감, 노동 불안정, 기술 발전, 산업 독성학과 몸 정치학 등을 포괄한 광범위한 리서치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분석적이면서도 시적인 논픽션 무빙 이미지를 연출한다.

Jooyeon Lee works with analytical yet poetic non-fiction moving image with expansive research and interviews to capture urban alienation, intimacy across borders, labour precarity, technological progress, industrial toxicology and body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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