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하고 올바른

나는 자라나는 채소들에게 성을 붙여주려고 했다. 저건 김쑥갓, 저건 송고추… 그러면 채소들이 좀 더 정직하고 올바르게 클까봐 채소를 키우는 땅은 콘크리트와 플라스틱 가루가 섞여 있는 버려진 땅. 철거 투쟁장을 지키는 사장님이 길에 연탄재를 뿌려놓았던 것 같아

기름을 넣어도 툴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발전기는 심장 소리. 어린 시절 이모에게 안겨서 잠이 들 때 들었던 기분

나는 자라나는 채소들에게 성을 붙여주려고 했다 그러면 채소들이 좀 더 정직하고 올바르게 클까봐. 매일 길거리로 울리는 시끄러운 스피커 소리 반대편에 있는 커다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그 소리에 응답해 주지 않아도 상관 없었다 우리에게는 성을 붙인 채소가 있으니까.

저기 좀 봐 웬 할아버지가 채소밭 옆에 똥을 싸고 있어. 엉덩이를 까고. 정말이잖아? 저 할아버지 노숙자 같은데? 맞아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행색이 노숙자 같아. 화장실을 찾아 가면 안 되나? 왜 저기에서 똥을 싸는 거야? 그런데… 저 똥은 누가 치우지? 나와 집을 나온 또 다른 친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 본다 자라나는 채소에 성도 붙여주었으면서 노숙자의 똥은 누가 치울지 고민하는 아이들

모든 게 정직하고 올바른 것은 아니야. 이들 중 몇몇은 나이를 먹어서도 대학에 가지 않았고. 이들 중 몇몇은 몇 년 뒤 성추행범으로 낙인이 찍히거나 아예 세상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는 그저 조금씩 미움을 받는 사람들일 뿐이었고 나는 미움을 받는 게 무섭지 않다 마치 저기 채소밭 옆에서 똥을 싸고 있는 한 노숙자처럼. 그 중에는 무조건 미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여자애가 있었고. 사실 모두 조금씩 다 미움을 받고 있었지 그 농도만 달랐을 뿐

사람들은 무언가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미워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애초에 모든 걸 다 가지고 있으면 무언가를 요구할 리가 없잖아

우리의 성이 포크레인에 옆구리가 잘리며 쓰러질 때 모두 다 자리를 비우고 어딘가에 가 버려서 그 성이 뚝 하고 잘리는 건 나만 봤거든. 나만 그걸 보고 있다는 게 서러워서 울지 않으려 했지만 울 수 밖에 없었다

우리의 성이라고 부르는 건 옳지 않다 그러면 미움을 받게 되어 있다
하지만 애초에 우리의 성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성을 요구할 리가 없잖아

나는 자라나는 채소들에게 성을 붙여주려고 했고 저건 김쏙갓, 저건 송고추… 남은 것은 김쑥갓이라고 써 놨던 팻말 뿐. 정직하고 올바르게 크기를 바랐던 채소들은 포크레인에 뽑혀 사라졌고 길거리로 크게 울려 대던 목소리와 기타 소리도 사라졌는데.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웬 할아버지가 채소밭 옆에서 똥을 싸고 있었잖아. 정직하고 올바르지는 않지만 어쨌든 나만의 기억으로 무조건 미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여자애의 기억으로

(2019)


이주연은 사회적 고립, 국경을 넘는 친밀감, 노동 불안정, 기술 발전, 산업 독성학과 몸 정치학 등을 포괄한 광범위한 리서치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분석적이면서도 시적인 논픽션 무빙 이미지를 연출한다.

Jooyeon Lee works with analytical yet poetic non-fiction moving image with expansive research and interviews to capture urban alienation, intimacy across borders, labour precarity, technological progress, industrial toxicology and body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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