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고 받기, 터지지 않을 폭탄을, 스파이들의

마이크 가까이서 손가락을 살며시 부딪힌다. 지문이 서로 긁히면서 모닥불을 피우는 소리를 낸다.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손가락들이 모닥불을 피우는 소리를 듣는다.

12시 1분. 현관 너머로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린다 손가락이 가열차게 부딪힌다. 집 주인은 현관을 두드린 사람에게 음식을 현관 앞에 두고 가 달라고 부탁하고. 그 너머로 비닐 봉투를 바닥에 집어 던지다시피 내려 놓는 소리가 들린다. 시간이 다시 흘러 12시 3분.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콜라의 탄산 소리 뼈가 으깨지는 소리를 듣는다. 탄산이 입 안에서 폭탄처럼 터진다.

막차도 끊긴 늦은 밤. 신촌로터리를 지나는 오토바이는 빨간 신호등이 바뀌기도 전에 엑셀 그립을 잡고. 대학 병원에 도착한 라이더는 약속한 시간보다 40초 늦었다. 간병인은 라이더가 40초 늦었다는 것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인공 정원을 배회하는 잠들지 못하는 환자들. 환자의 가족들은 의자를 붙여 선잠에 든다. 핸드폰 충전 케이블이 마치 탯줄처럼 얽혀 있다. 핸드폰 배터리는 항상 건강한 초록색. 간병인은 젊은 여성이 손가락을 살며시 부딪히는 소리를 둗는다. 간병인이 배달 음식을 입원실에 들고 가는지 몰래 감시하는 야간 병동의 간호사가 멀리 서 있다.

병원 설비를 점검하는 기사는 지하 기계실의 문을 연다. 막차도 끊긴 늦은 밤. 시간은 1시 40분. 점검 기사는 커다란 전기의 흐름에 대해 잘 모른다. 용역 업체에서 일해서는 세상의 흐름을 배울 수 없다고, 점검 기사는 생각한다. 시간은 2시 05분. 용역 업체에서 온 점검 기사는 승객용 엘리베이터 대신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탄다. 이렇게 늦은 밤에는 승객용 엘리베이터가 텅 비어 있으리란 걸 알면서도

그런데

육중한 화물용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점검 기사는 그 안에 탄 직원들과 눈이 마주친다. 젊은 의사들이 맞잡고 있는 건 하얀 천이 씌워진 병상. 그 위로 언뜻 보이는 사람의 옆얼굴. 점검 기사는 엘리베이터 한 구석에 서서 병상을 못 본 척 애쓰고 있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면 시간은 2시 07분.

오토바이 라이더는 병원을 빠져 나와 신촌로터리를 다시 달린다. 점검 기사는 화물용 엘리베이터에서 나간다. 젊은 의사들은 흰 천이 덮여진 병상을 끌고 병원 제일 밑층으로 내려간다. 인공 정원을 배회하는 잠들지 못하는 환자들. 의자를 붙여 선잠을 자는 가족들. 라이더는 음식과 콜라를 싣고 다음 도착지를 향해 달린다. 흰 천이 덮여진 병상의 도착지는 영안실. 오토바이 라이더는 서울의 이중 스파이. 누군가가 어딘가에서는 탄산과 뼈의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다. 스파이는 폭탄을 가득 싣고 도시를 달리고.

(2020)


이주연은 사회적 고립, 국경을 넘는 친밀감, 노동 불안정, 기술 발전, 산업 독성학과 몸 정치학 등을 포괄한 광범위한 리서치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분석적이면서도 시적인 논픽션 무빙 이미지를 연출한다.

Jooyeon Lee works with analytical yet poetic non-fiction moving image with expansive research and interviews to capture urban alienation, intimacy across borders, labour precarity, technological progress, industrial toxicology and body politics.


MORE

CV
Email
rand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