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런던으로

희수야 오늘이 내가 귀국한 지 딱 삼 년 되는 날이야. 어제 발인이었어. 아빠는 죽으면 어디에 묻혀? 할머니 댁 근처에 있던 선산으로 가지. 그리고 아빠한테는 죽는다고 하는 거 아니야. 이런 기억이 선명한데 아빠는 화장하게 됐어. 요새는 환경을 위해 화장하기도 하니까.

장례식 때, 스티로폼 그릇에 담긴 육개장이 정말 싫더라. 엄마는 구석에 앉아서 부조금을 셌어. 병원에서 쓰던 하얀 플라스틱 식판도 싫어서 아빠가 빨리 퇴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대전에 돌아오고 나서 가족들끼리 삼겹살을 먹으러 갔을 때 놓인 스테인리스 컵이 너무 싫어서 빨리 런던에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지. 군대에 갔을 때도 아무렇게나 쌓여진 병신 같은 숟가락이 정말 싫어서 빨리 제대하고 싶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어.

우리가 다니던 대학에는 다른 한국인 유학생도 많았는데, 어쩌다 그렇게 친해지게 된 걸까? 영문학 전공이면서 감명 깊게 읽은 소설로 해리 포터를 이야기하고, 주말마다 교회에 간다던 유학생들이 너무 싫어서 나랑 비슷한 얼굴을 한 학생하고는 눈도 안 마주쳤는데. 네가 다른 한국인 유학생들한테, 이번에 한국 다녀 오면서 오사카에 들렀어요, 라며 녹차 킷캣을 나눠 줬을 때 나는 다짐했어. 진짜 녹차가 아닌 녹차 맛의 바삭바삭한 초콜릿을 사 오는 여자애랑 꼭 연애하겠다고. 마침 다행히도 너는 피츠제럴드를 좋아했고 나는 에밀리 브론테를 좋아했어. 내가 피츠제럴드를 좋아하고 네가 에밀리 브론테를 좋아했다면 아마 우린 친해지지 않았을 거야.

그저 대학원만 바라보면서 졸업했을 때 고작 문사철로 유학가냐고 아빠는 정말 싫어하더라. 좋아서 하겠다는데 시켜야지 어쩌겠어. 나는 그런 아빠에게 공항에서 눈도 안 마주치고 비행기를 탔어. 왜 그랬을까? 그래도 나름 특별 전형으로 대학 잘 간 케이스인데 영어를 진짜 못 해서 수업을 도저히 제대로 들을 수가 없더라.

그래도 유학 생활은 재미있었어. 너도 만나고. 미러리스 카메라를 들고 헴스테드 히스나 캠든 타운을 싸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이걸로 광고기획사 취직할까? 이러고. 퓨전 스시집에 가서 스시를 먹다가, 한국에 이런 가게 하나 낼까? 이러는 네가 진짜 웃기다고 생각했어.

아빠가 사업을 접는다고 하길래 그럼 일단 군대에 다녀와서 생각해야겠다 싶었어. 너는 아직 졸업까지 몇 학기 남아 있었고, 날 기다려 준다고 했지. 병신 같은 스테인리스 숟가락이랑 딸기잼이 들어간 햄버거가 너무 싫어서 몸서리 쳐질 때마다, 네 생각을 하면 좀 낫더라고. 제대해 보니 아빠가 위암 판정을 받은 상태였어. 병원의 하얀 플라스틱 식판을 받고 반납할 때마다 학부 졸업을 한다는 네 연락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더라. 네가 나 대신에 돈 드릴로도 읽고, 실비아 플라스도 읽고, 존 판테도 읽고, 제임스 조이스도 읽어서 졸업을 하는구나. 전공이 잘 맞아서 다행이다 희수야.

왜 난 대학원까지 갔는데도 전공이 잘 안 맞았을까. 영어를 너무 못해서 수업을 잘 이해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 경영으로 갔다가 영문학으로 전과해서 전공이 어려웠나 보지. 어렸을 때부터 소설을 많이 읽을 걸. 사실 모든 게 잘 안 맞는 느낌이야. 카투사 지원도 안 해보고 그냥저냥 군대에 갔을 때도, 방학마다 뉴욕이나 플로리다나 리마나 우유니 사막 같은 곳에 여행 갔다 귀국하기 전날에도, 휴학 했을 때 아빠가 자격증 가진 분을 붙여서 굴삭기를 가르쳐 줬을 때도, 특별 전형 준비 때문에 대입 상담을 다니며 사실은 윗층의 유학원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도, 엄마가 억지로 수영 선수를 시키겠다며 수영장에 다니던 때도, 치과에서 교정을 하라고 엄마가 우길 때도 그랬어. 아빠는 무슨 돈으로 나를 런던에 보내준 걸까? 그건 잘 모르겠어. 누나들이 일찍 결혼해 나갔으니까 가능했던 것 같아. 그리고 교정은 결국 안 했어.

희수 너는 런던에서 지내는 내내 운전 연수를 몇 번이나 받고 나서야 차를 몰 수 있게 되었지. 운전석에 앉아서, 영어로 운전연수 다 했어! 잘 했지 오빠. 라고 수다를 떠는 모습이 정말 귀엽더라. 사실 런던에 살면서 운전까지 하겠다는 네가 좀 철없다는 생각은 했어. 그런데 좋아서 하겠다는데 시켜야지 어쩌겠어. 희수가 나 대신 런던에서 대학원도 진학하고, 경력도 쌓고 결혼도 할 거 같은데, 그 그림 안에는 아마 내가 없을 것 같아. 발인이 끝나도 당분간은 대전에 계속 있어야 해. 그러니까 교통사고 내지 말고, 주차비 조심하면서 운전을 했으면 좋겠어.

녹차 킷캣은 이제 한국에서도 꽤 유명해져서 인터넷이나 수입 과자점에서 살 수 있더라. 그걸 한 통 사서 네 생각이 날 때마다 하나씩 까 먹고 있어. 한 줄 씩 똑 끊어서 먹지 않고 커다란 과일을 베어 물 듯이 와사삭 하고 먹으면 세상의 규칙을 다 파괴한 것 같고 기분이 아주 좋아. 지겨운 수영장 레일을 부숴 버린 기분이 들어. 이제는 새벽에 스카이프 안 걸어도 돼. 대학원 논문 쓰려면 시간 관리해야지. 혹여나 석사 논문이 통과가 안 되면 한국 돌아와서 퓨전 스시집 해. 사진 찍어 놓으면 내가 인스타그램 홍보를 해 줄게. 스시집이니까 스테인리스 그릇은 절대 쓰지 말고 녹차는 꼭 진짜 녹차를 내자. 티백 현미 녹차 말고. 우리는 진짜 녹차가 나오는 퓨전 스시집을 하자 희수야.

(2018)


이주연은 사회적 고립, 국경을 넘는 친밀감, 노동 불안정, 기술 발전, 산업 독성학과 몸 정치학 등을 포괄한 광범위한 리서치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분석적이면서도 시적인 논픽션 무빙 이미지를 연출한다.

Jooyeon Lee works with analytical yet poetic non-fiction moving image with expansive research and interviews to capture urban alienation, intimacy across borders, labour precarity, technological progress, industrial toxicology and body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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