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몽

미국에서는 쓰러지는 소를 팔아넘긴다는 말 소들이 픽픽 쓰러진다는 말 그 말에 나온. 군화로 머리를 밟는 경찰을 보고 나온 여자아이들. 눈을 감으면 퀭 하니 눈을 뜨고 있는 소들이 보이고

세상엔 징후가 산재해 있다 나는 계시를 받았다
때는 왔다 도래하였다

직장에서 일을 관둘 것이라 말하며 중얼거리고 싶다. 세상엔 징후가 산재해 있죠 저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정신적 고향이라는 곳에서요 때는 왔죠 도래하였죠. 이런 말을 흥얼거리고 싶다

그런데 요새는 워낙에 사이비가 많아서. 함부로 말도 못 하겠다. 길거리에서 사람들한테 길도 못 물어보겠고.

씨는 뿌렸으나 추수를 할 수 없다
앗 이 문장을 쓰다가 씨 뿌린 것을 들켰다

중국에서는 야생 동물을 잡아 먹어서 그래서 무서운 전염병에 걸린다는 말 박쥐가 병을 옮긴다는 말 그 말이 두려워서 집에 숨어버린 여자아이들. 박쥐는 중국에서 복의 상징이라지. 기왕 집에서 노는 거 마라탕이나 시켜먹을까? 음식과 공기가 무섭지 그렇지 않니 그렇게 빨리 음식과 공기가 다른 나라로 넘어온다는 것이 무섭지 그렇지 않니. 눈을 감으면 귀를 열고 나는 박쥐들이 보이고

음식과 공기가 무섭지
그렇지 않다. 씨 뿌리는 것이 더 무섭다.

가위 하나가 그려진 결혼 불발 쿠폰 나는 복이 없는 사람이다 믿을 것은 복 밖에 없지 않나요? 이 말이 세상엔 징후가 산재해 있다는 말보다 더 믿음이 간다 나는 계시를 받았다는 말보다 더 안전한 것 같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박쥐들 사람들아 도대체 징후는 어디서 살 수 있는 거니 언제 세상이 끝난다는 거니

(2020)


이주연은 사회적 고립, 국경을 넘는 친밀감, 노동 불안정, 기술 발전, 산업 독성학과 몸 정치학 등을 포괄한 광범위한 리서치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분석적이면서도 시적인 논픽션 무빙 이미지를 연출한다.

Jooyeon Lee works with analytical yet poetic non-fiction moving image with expansive research and interviews to capture urban alienation, intimacy across borders, labour precarity, technological progress, industrial toxicology and body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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