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나는 추석에는 본가에 가지 않는다
설날에도 물론 가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그렇게 되었으며
가끔씩 부모에게서 추석 때는 집에 돌아오라는 연락이 와도
당연히 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매년 추석이 되면 친구들과 이태원에 간다
여자아이들과 게이 클럽을 가서 눈총을 받기도 하고 외국인만 입장 가능한 바에 굳이 한국인만 모아서 들여보내 달라고 떼쓰기도 하고 그렇게 일부러 미움을 받는 것이다
내 친구들은 추석 때는 집에 돌아가지 않는 인간들 언제부턴가 그렇게 되어 있어서 우리는 추석 때 어딜 가도 일부러 미움을 받게 되어 있다
그들 중 몇몇은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몇몇은 많이 아팠고 몇몇은 내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그렇게 되어 있어서
그렇게 때문에 이번 추석은 혼자서 뉴욕 스타일 피자를 먹고 혼자서 아주 슬픈 영화를 보고 영화관에서 계속 헛기침을 하던 할배에게 괜히 짜증을 내고 아 왜 늙은이들은 빨리 안 죽는거야 제삿밥이나 처먹어라
그러고는 집에는 걸어서 돌아오면서 한 친구와 보냈던 추석을 떠올렸다
빼빼 말랐고 나보다 한 살 어렸고 대학에는 가지 않았고
힙합을 하겠다고 시골에서 상경했고 밤중에 자꾸 내가 다니는 학교에 찾아오기도 했어
그러면 걔를 데리고 플스방에 가서 밤새 시간을 보내기도 했는데 그 친구가 이상하게 싫었거든
그런데도 나는 그 친구와 추석 전야에 만나
이태원에서 향신료가 가득한 음식을 먹고 소주를 가득 시켜 마시고 길거리의 외국인과 통성명을 하기도 하고 야외에서 진행하는 천박한 이벤트를 보기도 하다가 그 친구 집에 돌아와 한 숨 자고
아침에 같이 역 근처로 나오니
온 세상에 사람들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걔가 싫었던 이유를 보광동에 있는 그 친구네 집에는 온수가 나오지 않았고 나는 자취방이 없어서 밤새 그 친구와 플스방에서 GTA를 했기 때문이야
그렇게
나는 나이를 먹어서 혼자서 자취도 잘 하고 피자도 맥주도 사 마시고 영화관에서 모르는 사람한테 짜증도 내는 어른이 되었다
그 친구는 아마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어딜 가도 미움을 받게 되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