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위

아픔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 아픔은 미래에 일어나는 일이다. 아픔은 태양빛 속에 있다 우리 시간 속에 있다 그 시간은 열 네 시간이다. 열 네 시간 동안 아픔에 노출된다. 아픔은 어둡지 않다 그건 일종의 빛이다

아픔은 몇 년 뒤에 일어나는 수수께끼이다

이코노미석의 승객 300명이 각자 한 번씩 면세품 요청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300명이 13시간 동안 물을 다섯 잔 주스를 두 잔 밥을 두 번 간식 맥주 두세 번씩 그런데 그 이코노미 승객 300명을 담당하는 객실승무원은 9명입니다 그리고 비행기 내부는 0.9기압이다 산소 포화도도 다르다 아직 아무도 모른다 똑같은 짐을 들어도 신체 상의 무리가 얼마나 있는지. 승객들에게서 받는 감정 노동의 강도가 어떠한지. 여기는 하늘 위의 공장이에요 공장

아픔은 갑자기 시작되지 않는다 아픔은 서서히
열 네 시간 동안 그리고
십 일년의 주기로 온다

아픔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 제가 세 가지를 말해 드리고 싶어요 첫째 고위도 비행을 멈춰야 해요. 아픔을 위해 둘째 항공기의 운항 경로를 다양하게 짜야 해요. 아픔을 위해 셋째 항공승무원을 증원해야 합니다. 그런데 과연 항공사 측에서 얼마나 들어 줄까요? 아픔은 열 네 시간 동안 그리고 십 일년의 주기로 오고 있는데. 열 네 시간 동안 그리고 십 일년의 주기로 아픔에 노출된다

아픔은 피 안에 이미 퍼져 있다
아픔은 세포 안에 이미 퍼져 있다 아픔은

아픔이 이제서야 눈에 보인다 귀에 들린다 아픔은 지금 일어나고 있다 아픔은 아직도 수수께끼이다 아픔은 어디에나 있다 열 네 시간 동안. 십 일년 동안. 그 십 일년 동안 세상의 몇몇 부분들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 아픔은 어둡지 않다 아픔은 일종의 빛이다

(2019)


이주연은 사회적 고립, 국경을 넘는 친밀감, 노동 불안정, 기술 발전, 산업 독성학과 몸 정치학 등을 포괄한 광범위한 리서치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분석적이면서도 시적인 논픽션 무빙 이미지를 연출한다.

Jooyeon Lee works with analytical yet poetic non-fiction moving image with expansive research and interviews to capture urban alienation, intimacy across borders, labour precarity, technological progress, industrial toxicology and body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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